<빙하의 기도> 을지로 빈칸
2022. 6/7 ~ 6/12

촛불을 켠 채로 강물에 띄워 보내는 행위는 다양한 지역과 종교를 망라해 존재한다. 물에 띄워진 불은 전복하면 그대로 소화되어 버리는 위태로운 상태이다. 물 위의 불은 멀리 가지 못한다. 그러나 불에 담긴 염원과 소망의 마음을 불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보내고자 하는 것이 이 무력해 보이는 시도의 의미이리라.
촛불은 일상적인 행위를 하기 위한 불이 아니다. 어둠을 없애기에는 약하고, 그 지속시간도 초의 크기에 한정된다. 그러나 초를 꺼트리지 않는 행위는 작은 불씨에 연속적인 생명을 부가한다. 기도문은 짧고 염원의 시간도 길지 않다. 그러나 익명의 손길은 꺼져 가는 촛불을 새로운 초에 붙이는 작은 노동으로 불의 수명을 연장한다. 이렇게 염원을 담은 불의 시간은 기도의 시간을 짊어진 채 더 길게, 더 멀리 간다.
불은 타고 재를 만든다. 재는 불의 에너지가 뺏긴 마이너스의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물이 열에너지를 잃으면 그 표면부터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빙하의 기도>에서 불의 재는 물의 얼음으로 치환된다. 살얼음이 모이고 쌓여 에너지의 공백이 생기면, 살얼음을 재 삼아 잿불이 다시 피어오를 수 있다. <Ice Igniting>은 시어를 담고 있는 투명한 왁스가 얼음 틀 속에 부어지고 굳혀져 물에 띄워진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 얼음은 불을 물 위로 나르는 몸체가 된다. 살얼음은 녹아 불씨를 피워냈다. 얼음은 제 몸을 녹여 불을 만들고, 불은 살얼음을 모아 다시 자신을 피워낸다.
<빙하의 기도>는 손의 모양을 한 투명한 양초들이 책상과 의자에 붙어 녹아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책상과의자는 마치 깁스를 한 몸처럼 석고로 둘러싸여 있다. 석고 위에, 얼음과 같이 투명한 손들은 불에 녹아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개별 신체는 유일하지만 단일하지 않고, 고유하지만 동질적이지 않다. 그리고 인간 종은 자신의 신체를 타인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의 시작은,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넓적다리뼈라고 말한다. 타인의 상해 입은 다리를 나의 신체의 연장으로써 여기고 돌보아 생명을 연장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수없이 반복되어 신체에서 신체로,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생명의 연쇄를 만들었다. 나의 이루지 못한 염원은 다른 이가 계속해서 원할 것이며, 나의 끝마치지 못한 기도문은 다른 이의 입으로 연장될 것이다. 이 순간 인간 종은 하나의 물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