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ju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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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are Because We Scare>



2021. 4. 8 - 2021. 4. 17
백영공간 (100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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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1: the room〉2021, 거즈, 레일, 가변설치
〈piece 2: the bed〉2021, 거즈,  96 x 210 x 20 (cm)

„Ich reiße das Pflaster von der Wunde, und die Wunde ist im Pflaster;“ – Peter Handke, „Die verkehrte Welt“, in Die Innenwelt der Außenwelt der Innenwelt
„상처에서 반창고를 떼어내자, 반창고에 상처가 나 있다“ – 페터 한트케, „전도된 세계“,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 중에서

〈We Scare Because We Care〉 개인전은 신체 이미지를 거즈와 시멘트, 파라핀이라는 각자 다른 지지체 위에 놓음으로써 몸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서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피부에 물감을 묻히고 천과 종이 위에 눌러 만들어진 신체 이미지는 거즈 위에, 시멘트 위에, 파라핀 위에 놓여 서로 다른 몸체를 만든다. 이질적인 몸체들은 전시관 안에서 서로 공명하며 한 가지의, 멈춰 있는 신체의 존재가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거즈 한 장은 완성된 천이 아니다. 임시로 직조된 실의 조합인 거즈는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 피부의 대체재가 되곤 한다. 상처 난 피부 위의 거즈는 임시-피부 역할을 한다. 거즈가 상처를 덮을 때, 거즈에도 새빨간 상흔이 생긴다. 신체의 이미지는 거즈 위에 흉터로서 각인된다. 거즈는 상처가 생김으로써 피부의 대체재가 된다. 즉, 상처는 신체성 그 자체인 셈이다.


그 자체로 끝단이 마감되지 않은 거즈 한 장은 서로서로 꿰매어져 공간을 가로지르는 막을 만든다. 〈piece 1: the room〉에서 거즈-막은 병원 다인실의 가림막 커튼의 형상을 따르고 있다. 그 가림막 속의 방은 방이면서도 방이 아니다. 그것은 가림막의 역할을 하면서도, 커튼을 걷는 아주 단순한 행위로 무너질 수 있는 방이다. 거즈-막은 공간 속에서 일정한 면적을 차지하고 특정한 형태를 지닌다. 바늘과 실로 꿰맨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막은 피부에 대한 촉감적인 감각을 상기시키며, 바깥 세계에 열려 있는 취약한 신체에 대한 은유의 역할을 한다.

〈piece 1: the room〉에서 거즈가 공간을 만든다면 〈piece 2: the bed〉에서 거즈는 사물이 된다. 거즈는 병상의 싱글 매트리스의 크기와 부피를 가진다. 이 병상은 가림막에서 나와 천장에 매달린 형태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이 병상에는 환자가 없으나 천 위에는 신체의 흔적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piece 2: the bed〉의 양쪽 벽에는 마찬가지로 신체의 이미지가 파라핀 판 위에 놓여 있다. 신체의 이미지가 각인된 파라핀 양초는 〈piece 1: the room〉, 〈piece 2: the bed〉에서처럼 공중에 떠 있지 않고, 스스로의 발로 서 있다. 양초에는 불이 붙여졌고, 그 때문에 신체 이미지의 일부와 파라핀 양초는 녹아내려 회화를 조각하게 되었다. 촛농은 상처를 애도하는 눈물처럼 이미지를 가로질러 떨어지며 제 흔적을 남겼다. 타버린 천의 끝단과 녹아내린 양초는 불이 붙여졌다는 것을 암시하며, 전시에 빛과 불의 이미지를 더한다.

〈piece 1: the room〉의 –원래는 환자의 발이 향하고 있을- 앞부분 커튼에는 양쪽에서 마주 보는 빛과 빛이 맺혀져 있다. (〈〈The Scar(e)〉) 한쪽에서는 프로젝터로 영화 〈Dr. Strangelove〉의 마지막 장면이 반복 상영되고 있으며, 그 반대쪽에서는 스포트라이트의 환한 빛이 영상을 지우고 있다. 영화 〈Dr. Strangelove〉의 마지막 장면은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과 낭만적인 음악이 동시에 재생되는 것이다. 거즈 위에, 피부 위에 이미지를 새기려는 끊임없는 시도는 무한히 좌절된다. 거즈 천 위에는 환한 빛 속 간신히 살아남은 얼마간의 화소만 일렁이고 있다. 프로젝터의 빛으로 그려진 핵폭탄이 만든 섬광, 세계에 남긴 핵폭발의 상처는 대체-피부 위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이내 또 다른 섬광에 의해 지워지고 만다. 빔 프로젝터에서 빛을 그리는 데이터로 변환되어, 피부가 사라진 채 형체를 잃은 채로 정처없이 떠돌던 상처는 다시금 맞은편 조명에서 발산하는 빛에 의해 은폐된다. 결국 공간 안을 채우는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낭만적인 음악뿐이다.

〈piece 2: the bed〉2021, 거즈,  96 x 210 x 20 (cm)  


〈The Scar(e)〉, 2021, 거즈, 빔프로젝터, 스포트라이트, 영상(loop)

〈the care〉 2021,거즈에 전사, 백시멘트, 가변설치


〈White Shadow〉 2021, 석고, 가변설치
〈The Scar(e)〉 맞은편의 움푹 들어간 하얀 방에서는 〈The Care〉를 볼 수 있다. 〈The Care〉에서 이 시멘트 벽돌들은 애도하는 위령비처럼 열과 행을 맞춰 선 채로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몸에 물감을 묻히고 천에 찍어 생긴 신체의 흔적들은, 잘려 시멘트 벽돌 위에 붙여져 함께 굳어졌다. 신체-흔적들은 파라핀 양초처럼 몸을 가지고 스스로 서 있으나, 잘려지고 파편화되어 신체 모양의 아주 일부분만 보여지고 있다. 가슴 옆에는 허벅지가, 팔 옆에는 배꼽이, 일률적인 비석의 엄격한 배치는 유기체의 조합을 허락하지 않는다.

비석이 있는 방의 벽에는 선반이 있다. 선반에는 유리병에 석고를 붓고 유리병을 깨트려 모양을 얻은 조각들이 올려져 있다. (〈White Shadow〉) 유리병을 거푸집으로 삼은 석고는 그 몸체가 태어나기 위해 우선 유리병이 파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석고 오브제들은 유리병이라는 피부를 되찾을 수 없는, 피부 없는 몸체이며, 회복되지 못하는 상처로 이루어진 몸체이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석고 조각들은 마치 군중처럼 선반 위에 서 있다. 몇 개의 석고 조각들은 아래로 내려와 〈The Care〉의 시멘트 벽돌과 기대어 균형을 잡고 있다. 석고 조각과 시멘트 벽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은 마치 몸체와 몸체가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것 같다.

피부를 잃은 몸체와 피부의 조각으로만 이루어진 몸체는 서로 기대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어쩌면 취약한 신체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전시의 대답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White Shadow〉의 피부 없는 석고 오브제들과, 각자 파편화된 피부를 가진 〈The Care〉는 서로가 서로를 기대 불완전한 신체 간의 연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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